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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한 정보와 과학

마녀 재판의 성지 살렘에 관하여

by 아눈나키1 2024. 3. 3.

1692년에 자행된 놀라운 사건은 이십 명이 넘는 무고한 여성들 및 남성 그리고 아이들과 개들마저 죽이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마치 영화 곡성처럼 아이들의 발작이 의심을 낳고 그것이 살인 재판으로 이어진 것인데요. 실향민을 받아들이며 산 살렘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가장 약자를 괴롭히며 의심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무모한 마녀 사냥으로 이어진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분쟁의 시작

중세시대에서 근대 초기까지 기독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들은 마녀가 인간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미국 매사추세추의 살렘 마을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데요. 1689년 영국 군주 윌리엄과 메리는 미국 식민지에서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뉴욕 북부, 노바스코샤, 퀘벡 지역 등을 황폐화시켰고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에 있는 에섹스 카운티 특히 살렘 마을로 많은 난민들을 보내게 됩니다. 

 

 

 

살렘은 영국 식민 개척자들이 나름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던 청교도들이 지은 도시 이름입니다. 정착민들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의 예루살렘을 따서 살렘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수십년에 걸쳐 주민들이 몰려 들어왔고 지역 내 빈부 격차가 심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런 데다가 식민주 주민 및 실향민, 천연두 전염병 밍 극한 날씨로 인해 모두가 예민해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살렘 마을에 부임한 목사 사무엘 패리스에 관한 논란도 한몫했습니다. 그는 매우 엄격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는데요. 당시 청교도인이 대부분이던 이 마을 사람들은 목사를 탓하기 보다 모든 분쟁의 원인을 악마의 짓이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목사 딸들의 광기

 

그리고 무슨 일인지 1692년 1월에 9살된 패리스 목사의 딸 베티와 11살의 조카 아비가일이 일종의 광기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독특한 소리를 내며 좀비처럼 목을 비틀었는데 이를 두고 지역 의사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라며  의아해했습니다. 또 다른 소녀인 12살의 앤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고요. 그래서 2월 당시 식민지 관리인이 조사를 하던 끝에 패리스 목사 집안의 노예가 된 세 여성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카리브해 여성 티투바와 노숙자 거지 사라, 그리고 가난한 노파 등 약자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살렘의 마녀 사냥 시작

 

그렇게 이 세 명의 여성들은 끌려가서 며칠 동안 심문을 받았고 무죄를 외치는 가운데 티투바는 갑자기 악마가 나에게 와서 그를 섬기라고 명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상상력도 풍부했던지 검은개, 빨간 고양이, 노란 새 그리고 흰머리의 큰 남자 등 정교하게 정황 묘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청교도들을 파괴하려는 여러 다른 마녀들이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촉발된 집단 광기는 멈추질 못했고 이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편집증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라의 네 살짜리 딸 도로시가 뭘 안다고 심문하였고, 어린 아이가 멋 모르고 소심하게 대답한 것을 자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마녀 재판의 시작

 

1692년 5월 특별 재판소를 설립하였고 재판소 앞에 처음으로 소환된 여성은 험담을 일삼고 문란하기로 유명한 나이든 여성 브리지트 비숍이 오르게 됩니다. 재판관은 그녀에게 마법을 저질렀는지 물었으나 그녀는 자신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만큼 결백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6월 10일 교수형을 당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녀 재판은 7월에 5명, 8월에 5명 그리고 9월에 8명을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하버드 총장이 무고한 한 사람이 단 한 명의 유죄 판결을 받는 것보다 열 명의 마녀가 탈출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재판관은 자신의 아내마저 마녀로 의심되자 더 이상의 체포를 금지하고 고발된 마녀들을 석방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 재판소를 해산하고 1963년 5월까지 주술 혐의 등으로 투옥된 사람들을 모두 사면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19명의 남녀가 갤로스 언덕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뒤였습니다. 

 

재판에 회부되길 거절한 71세의 한 남자는 무거운 돌로 압박을 받아 사망하였고 피고인 중 최소 5명이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세일럼 마을의 악마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마리의 개도 집단 히스테리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비극의 날 그리고 아이들 발작의 원인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인지 법원은 1697년 1월 14일 세일럼의 비극에 대한 반성으로 단식과 영혼을 기리는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1702년 법원이 재판이 불법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에는 주술을 부린 마녀 재판이었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비슷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 본성은 사악하기 그지없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문제의 근원이 된 아이들은 왜 그런 발작을 일으켰던 것일까요? 일설에 의하면 에르고트 중독이란 말이 있던데요. 자홍곰팡이균에 오염된 곡물 빵을 먹었을 때 비슷한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합니다. 에르고트 중독에 걸리면 환각 및 경련 그리고 신경학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확인된 바는 없으니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독버섯이 이런 증상을 일으킨다는 말도 있지만 이 역시 단정할 수는 없고요. 여하튼, 오늘날 살렘에는 마녀 사냥 명소가 되어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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