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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덕후

인도 사회와 종교에 관하여

by 아눈나키1 2023. 3. 29.

힌두교는 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종교로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에서 널리 믿는 종교입니다. 요가 전통과 카르마 개념에 기초한 매일의 도덕적 삶과 결혼 풍습과 같은 사회 규범까지 영향을 미친 종교입니다. 힌두교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다음 가는 종교로 도대 인도의 종교 사상인 베다에서 비롯되며 베다의 사상은 기원전 1500년 이전으로 올라갑니다. 이러한 힌두교는 다신교적 일신교로 교주 즉 창시자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굽타 왕조와 힌두교의 탄생

 

힌두 사회의 세계 국가는 굽타 왕조입니다. 세계 종교는 힌두교였습니다. 굽타 왕조는 쿠샨 왕조가 멸망한 후 4세기 초에 찬드라 굽타 1세가 건국하여 북인도를 지배하던 제국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십진법이 발명되었습니다. 찬드라 굽타 2세 때 쿠샨인과 샤카인, 투르크인과 같은 이민족들을 몰아내고 북인도를 통일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굽타 왕조에서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 별과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인도의 민간신앙과 불교를 융합한 힌두교가 왕과 백성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힌두교도들의 일상생활에 마누 법전이 영향을 끼친 것도 바로 굽타 왕조 시기부터입니다. 또한, 아리아인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마하바라타가 힌두교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훈족의 침입과 그들의 정체

 

몰락기에 접어든 굽타 제국으로 이동해 온 민족은 유라시아 스텝 지대의 훈족이었습니다. 훈족은 서양사에 등장한 최초의 투르크계 민족입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킨 훈족은 5세기 중엽에 가장 위세를 떨쳤고 아틸라의 지휘 아래 서쪽은 라인강에서 동쪽은 카스피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훗날 헝가리와 터키, 몽골은 이들을 자기 민족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하죠. 이러한 훈족은 고대 로마 쇠퇴기에 침입하여 이들을 직간접적으로 몰락시키는 데 기여했다고도 하는데요. 사실 훈족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라고 합니다. 한동안 훈족을 흉노와 동일시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확실한 근거는 없는 거로 보입니다.

 

 


 

힌두 철학의 아버지 샹카라

 

샹카라는 8세기 인도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남부 인도에서 태어나 베다를 학습하고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기적을 행했다고 합니다. 그는 승원을 건설하고 많은 저서를 쓰고 북부 인도에서 사망합니다. 그는 불이일원론을 주장하였으며 절대자 브라만이 절대무차별의 실재이며 최고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겨우 32세까지 살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정말로 많은 일을 합니다.  그는 인도의 지적이고 정신적인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는 물질적 세계는 환상 즉 마야이며 궁극적인 현실은 물리적 세계 너머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개인의 영혼이 궁극적인 현실과 개인의 자아의 일체성을 깨달아야만 해방 즉 목샤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명상과 자기 탐구의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샹카라의 철학은 힌두교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의 가르침은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참고로 힌두교자들은 사나타나 다르마라고 부릅니다. 사나타나는 영원하다는 뜻이며 다르마는 법 또는 법칙이란 뜻입니다.


 

부처로 알려진 싯다르타에 관하여

 

헬라스가 인도에 침입하기 시작한 것은 박트리아 왕국의 그리스인인 데메트리우스 왕이 침략했을 때였습니다. 굽타 제국이 성립된 연대로 여겨지는 기원후 390년에 침략을 그쳤습니다. 헬라스 사회가 침입하기 이전은 기원전 185년 찬탈자 푸샤미트라에 의해 멸망된 마우리아 왕조가 바로 세계 국가였습니다. 이 제국의 배후에 파괴적인 전쟁이 벌어진 일종의 동란기가 있었습니다.

 

 

 

이 동란기 중에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불타도 있었습니다. 불타 붓다 부처 다 같은 말인 가운데 부처의 인생에 대한 태도는 당시 사회가 기운이 쇠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부처의 본명은 싯다르타 고타마이며 불교의 창시자입니다. 그는 기원전 6세기경 현재 네팔의 룸비니에서 태어나 부유한 왕자로 살았습니다. 특권 계층임에도 그는 주변에서 관찰한 인간의 고통으로 인해 연민을 느꼈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왕실 지위를 포기하고 떠납니다. 그는 몇 년 동안 금욕주의자로 지내며 강렬한 명상과 자기부정을 실천해 갑니다. 하지만 그는 이 접근법이 고통으로부터 진정한 해방으로 이어진다고 보진 않으며 거부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인도의 보드가야에 있는 보디 나무 즉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명상을 했고 부처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부처는 깨어난 자를 의미합니다.

 

그는 사대진리와 팔정도를 설파하며 욕망과 애착, 무지 등 인간 고통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고 극복함으로써 고통을 끝내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그의 가르침은 현실의 본질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의 길에 대한 그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 기초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인도 전역 및 세계 다른 지역으로 퍼졌고 그렇게 세계 종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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